화려한 명소나 북적이는 카페 거리가 아닌, 사람이 살고 있는 풍경 그 자체를 마주하는 여행을 원한다면 전북 고창군 상하면이 제격이다. 이곳은 지도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어느 계절이든 차분하게 방문자를 맞이하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SNS나 유튜브에도 거의 소개되지 않은 이 마을은, 자연과 사람, 시간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쉼표처럼 필요한 이들에게 상하면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백 같은 공간이다.
교통편 – 작지만 꽤 단단한 접근성
서울 기준에서 출발한다면 KTX 익산역까지 먼저 도착해야 한다. 익산역에서 고창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며, 그 후 고창터미널에서 상하면 방향 농어촌버스를 타면 약 4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자가용 이용 시에는 호남고속도로 고창 IC를 통해 진입하면 되며,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좁고 굽은 시골길이 많아 속도를 줄이는 것이 좋다. 하지만 바로 그 느림이 상하면 여행의 시작이 된다.
숙박 – 마을 안에서 머무는 경험
상하면에는 대형 리조트나 호텔은 없지만, 오히려 그 점이 여행의 질을 높여준다. 농가 민박과 작은 한옥형 게스트하우스가 마을에 흩어져 있으며, 대부분은 바다 혹은 논을 마주하고 있다.
대표적인 숙소는 ‘상하의 집’이라는 70년 된 고택 민박이다. 창호지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와 낮은 목재 문턱, 마당에 심어진 감나무가 오래된 시간의 지층을 보여준다. 가격은 1박 기준 5만~7만 원 선이며, 사전 예약은 전화로만 받는다. 숙소 주인은 대부분 마을 주민으로, 식사 제공이 가능하다면 제철 나물 반찬과 갓 지은 밥을 내어준다.
식사 – 투박한 재료 속의 진심
상하면에서는 음식점보다 ‘밥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별도의 식당을 찾는다면 면사무소 근처에 위치한 작은 식당 ‘해창식당’이 있다. 이곳은 주로 된장찌개, 고등어조림, 김치전 같은 집밥 메뉴를 제공하며, 가격은 1인 기준 8,000원 내외로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진짜 추천하고 싶은 건 민박집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다. 직접 재배한 쌀로 지은 밥, 주인이 손수 담근 된장으로 끓인 국, 밭에서 따온 고추로 만든 고추장. 간소하지만 입안 가득 풍미가 퍼지는 그 밥상은, 도시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다.
여행의 루트
– 고창 갯벌과 학원농장의 길
상하면 여행의 핵심은 ‘걷는 것’이다. 도보 여행자라면 학원농장 일대 논길을 추천한다. 계절에 따라 벼, 보리, 유채꽃이 드넓은 평야를 물들이며, 풍력발전기와 함께 찍는 풍경 사진은 감성적인 SNS 콘텐츠로도 손색없다.
도보로 약 30분 거리에는 고창 갯벌이 펼쳐진다. 이곳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자 람사르 등록 갯벌로, 칠면초, 갯벌게, 노랑부리백로 같은 희귀한 생물들이 서식한다. 조수 간만의 차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갯벌의 모습이 달라지는 풍경은 마치 숨을 쉬는 자연의 호흡처럼 느껴진다.
– 상하농원
상하면의 중심에는 '상하농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매일유업과 고창군이 함께 조성한 농촌형 테마공원으로, 단순히 오락적인 요소를 넘어 지속 가능한 농업의 가치와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체험을 통해 전달하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132,000 제곱미터에 달하는 드넓은 대지 위에서는 동물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계절마다 다채로운 농작물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운영 시간: 매일 오전 9:30 ~ 저녁 9:00
입장료: 만 13세 이상 9,000원, 37개월 ~ 만 12세 어린이 6,000원
감성 포인트 – 여백의 풍경, 낯선 평화
상하면의 진짜 매력은 그 어디서도 재현할 수 없는 ‘여백’에 있다. 이곳에서는 특별한 목적 없이 걷다가도, 이름 모를 들꽃과 눈이 마주치고, 모퉁이를 돌면 고양이 한 마리가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풍경을 만나게 된다. 도시에서는 무의미하게 지나쳐 버리는 장면들이 이곳에서는 특별한 순간이 된다.
해질 무렵, 학원농장 언덕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다. 해는 천천히 지고, 땅은 붉게 물들고, 공기 중에는 습기와 풀 내음이 감돈다. 그 속에서 사람은 말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상하면은 바쁘게 살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마을이다.
마무리 – 관광지보다 삶에 가까운 여행을 원한다면
고창군 상하면은 일부러 꾸미지 않은 여행지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삶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라서 특별하다. 이 마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고, 천천히 흘러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슬로여행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진짜 이유를 이곳에서 비로소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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