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흥은 ‘나로우주센터’나 ‘고흥 유자’ 같은 대표 특산품 외에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지만, 실제 이곳은 천천히 걸으며 머물기에 보다 좋은 여행지다. 빠르게 사진 한 장 찍고 넘어가는 곳보다는, 사람이 많지 않고, 자연의 소리와 냄새가 온전히 느껴지는 길을 찾는 이들에게는 정말 보석 같은 지역이다.
최근에는 ‘미세 여행’이라는 키워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미세 여행이란 유명 관광지가 아닌, 현지인들만 아는 조용하고 소소한 장소를 찾아가는 새로운 여행 방식이다. 이 글에서는 그런 미세 여행의 기준에 딱 들어맞는 고흥의 걷기 좋은 산책길 3곳을 소개한다.
어느 SNS에서도 흔히 볼 수 없고, 유튜브 리뷰도 거의 없지만, 고흥을 직접 느끼고 싶고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꼭 걸어봐야 할 진짜 길들이다.
전남 고흥 숨은 산책길 - 봉래면 죽암마을 뒤편 ‘소나무 해안 산책로’
- 위치: 전남 고흥군 봉래면 죽암리
- 소요 시간: 왕복 약 40분
- 특징: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
죽암마을은 고흥의 끝자락, 나로우주센터로 가는 도중에 살짝 비껴 있는 작은 마을이다. 대부분은 차로 스쳐 지나가지만, 이 마을 뒤편에는 아주 조용하고도 그림 같은 해안 숲길이 숨겨져 있다.
이 길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숨겨둔 것처럼 조용하다. 바다 옆으로는 큰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로 햇빛이 들이치는 풍경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바람을 막아주는 덕에 계절과 상관없이 걷기 좋은 코스다.
현지인들 말로는 "예전엔 마을 어르신들이 매일 아침 여기서 스트레칭하며 산책하던 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길 전체가 걷기 편하게 정비돼 있고, 중간중간 벤치와 그늘 공간도 있다.
전남 고흥 숨은 산책길 - 동일면 ‘남열해돋이공원’ 아래쪽 조용한 해안길
- 위치: 전남 고흥군 동일면 남열리
- 소요 시간: 약 30~40분
- 특징: 동해처럼 일출이 보이는 해안선, 바위 해변과 자갈 소리
남열해돋이공원은 고흥에서도 비교적 유명한 관광지다. 하지만 이 공원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공원 내부가 아니라, 아래쪽으로 살짝 내려가면 시작되는 해안 산책로에 있다.
이 길은 대부분의 관광객이 놓치고 가는 곳이다. 잘 정비된 데크나 표지판도 없고, 좁은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점점 바다와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자잘한 자갈들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까지 오롯이 들린다.
이곳은 특히 아침 일찍 걸으면 좋다. 새벽 6시 30분쯤, 동해처럼 환하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그 시간은 도시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조용한 기쁨을 준다.
현지 주민은 이 길을 “아침 명상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무도 말 걸지 않는 그 시간, 그 길 위에서 나를 만나는 경험은 아주 특별하다.
전남 고흥 숨은 산책길 - 도화면 ‘서정리 옛길’ – 폐가 지나 숲으로 이어지는 마을 산책로
- 위치: 전남 고흥군 도화면 서정리
- 소요 시간: 약 1시간 내외
- 특징: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 옛길, 옛 돌담길 + 숲 + 작은 계곡
서정리는 고흥에서도 인구 감소가 심각한 지역 중 하나다. 그만큼 사람이 거의 다 떠난 조용한 마을인데, 그래서인지 길 곳곳에 과거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산책로는 옛 돌담길이 이어지다 갑자기 숲속으로 연결되는 독특한 구조다. 중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도 있고, 그 곁을 흐르는 작은 계곡물 소리가 은근하게 들린다.
이곳은 특히 가을에 아름답다. 노란 은행잎이 길 위에 떨어져 있고,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누군가 이 길을 혼자 걸었다면, 분명 다시 걷고 싶어질 것이다.
어떤 이는 이 길을 ‘고흥 속의 시골 교토 같다’고도 했다. 고요하고, 정적이며, 의미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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