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단촌면에 위치한 탑리역은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는, 조용한 ‘폐역’이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기차가 멈춘 곳이 아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의성에서,
잊힌 공간들이 남긴 이야기와 감정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는 장소였다.
기차 소리가 사라진 플랫폼 위를 걷고,
인근의 폐교 형태의 오래된 건물들을 지나며
나는 이 지역에 흐르는 고요한 정서와
사람들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기차가 떠난 곳, 탑리역을 찾아서
탑리역은 중앙선에 속했던 오래된 간이역이다.
1955년에 개업했지만, 2007년 복선 전철화 공사로 운행이 중단되며 공식 폐역되었다.
그 이후로 이곳은 여행자들이 간헐적으로 찾는 사진 명소가 되었다.
의성 시내에서 차로 약 20분.
마을을 벗어난 들판 사이에 멈춰 선 간이역이 조용히 놓여 있다.
역사는 낮고 단출하다.
기차가 오가지 않지만, 플랫폼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위엔 풀들이 자라 있고, 벤치에는 먼지가 얹혀 있다.
마치 시간이 흘렀지만 누군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 같은
그런 조용한 기다림이 이곳에는 있다.
누구도 말 걸지 않는 플랫폼
플랫폼에 올라섰을 때,
나는 말없이 먼 풍경을 바라봤다.
기차는 오지 않지만,
기차가 지나간 시간들은 여전히 이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녹슨 철로 옆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탑리’라는 역명판도 시간이 흐른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이곳을 떠났던 사람들의 기억이 따라 부는 것처럼 느껴졌다.
관광지가 아니어서 더욱 좋았다.
사람이 거의 없었고,
그 고요함 덕분에 공간은 더욱 선명하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플랫폼 옆, 시간 속에 멈춘 교실
탑리역을 지나 마을 쪽으로 5분 정도 걷다 보면
옛 학교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낡은 교실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정확히 어떤 학교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외관과 구조로 보아 분교나 병설 유치원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출입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바깥에서 바라본 교실 창문 안쪽에는
오래된 칠판, 뒤엉킨 책상, 삐걱거리는 문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곳 역시 시간이 멈춘 공간이었다.
어쩌면 이 교실에서 하굣길 아이들이 탑리역으로 달려가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역과 폐교 형태의 공간이
하나의 시간선 위에서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라진 것’ 속에 남은 감정
기차역도, 학교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 자리를 지우지 않은 채 남겨두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사람의 감정이 남아 있었다.
탑리역 플랫폼에 앉아 있으면,
기차를 기다리던 누군가의 뒷모습이 떠오르고,
옆 건물의 낡은 교실을 바라보면,
선생님 목소리와 아이들의 소란한 웃음소리가 상상된다.
사람은 없지만, 감정은 있다.
관광지나 볼거리는 없지만,
기억을 상상하는 여행이 가능했던 곳이다.
의성 탑리역 폐역 여행 팁
- 위치: 경북 의성군 단촌면 탑리리 (네비에 ‘탑리역’ 입력하면 정확히 안내됨)
- 교통: 의성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 약 15~20분 소요
- 준비물: 물, 카메라, 슬로우워킹을 위한 편한 신발
- 주의사항: 폐역이므로 역무실 없음, 플랫폼 출입 시 안전 주의
- 주변 장소: 탑리 삼층석탑(보물 제188호), 단촌면 전통장터 터
왜 이런 곳을 찾게 되었을까
화려한 관광지나 SNS에서 ‘인생샷’을 찍는 장소도 좋다.
하지만 이런 폐역이나 폐교 같은 공간은
그 자체로 ‘말을 하지 않는 풍경’이다.
그 풍경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곳을 걷는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되살린다.
그 감정은 블로그나 사진보다 더 오래 남는다.
의성 탑리역은 그런 곳이었다.
아무도 타지 않는 기차역,
그리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 교실.
그러나 그 안에만 존재하는 진짜 여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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